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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β┖υΕJini/β┖υΕJini's Story

연극 "낮잠"

by ㏈ª ☞ β┖υΕJini.κR 2010.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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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처음으로 본 연극~~~ 오늘의 기억이 오래 남을듯 싶구나~~~

우리 사회는 이렇게 말한다. 늙어서 주책이라고^^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청춘이다." 이말 처럼
이 영화를 통해 황혼기의 접어든 한남자의 첫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과거의 나 그리고 현재의 나를
통해 이 연극은 시작된다. 이야기가 진행된다.  앞으로 내가 황혼기에 접어 들었을때 지금 마음 그대로 그때도 느낄수 있었으면 좋겠다.


젊은 날 열심히 일을 해 돈을 모아놓고 퇴직 후에는 일생을 함께해 온 아내(혹은 남편)와 남은 시간을 여유롭게 보낸다는, 아주 평범한 상상. 그러나 무수한 책과 영화가, 텔레비전 속 캐릭터들과 주위의 사람들이 알려주었다. 소박한 줄 알았던 그 상상이 얼마나 거대한 환상이었는지를 말이다. 아내는 죽고 혼자 남아 밀려드는 무력감에 좌절하는 한 노인이 있다. 그는 시들어버린 자신의 삶에 진심으로 절망했으면서도 발버둥 칠 기력도 남아있지 않다. 나이 육십이 되면 그것조차 허무한 행동이란 걸 알게 되는 걸까.
 
“할 일 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자괴감,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허무함, 길고, 시들고, 말라가는 시간의 악취…(박민규 소설 ‘낮잠’)”
 
여기 한 사내가 벤치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다. 살랑거리는 나뭇잎들 사이로 적당하게 몸을 덮어주는 따뜻한 햇살, 그리고 조용한 사위. 나른한 평온이 감싸고 있는 것 같지만 그의 표정이 달콤하지만은 않다. 이곳, 요양원에서 낮잠을 자는 한영진은 그렇게 시간을 버티고 있다. 영원한 퇴근 후 아내도 잃고 외로움 끝에 다다른 곳이 이 벤치다.
 
 
 
- 사랑으로 포장될 수 없는 노년의 삶
 
첫사랑. 간지럽고 유치한 단어지만 별처럼 잡을 수 없는 곳에서 반짝이는 꿈과 같은 단어다. 시간이 지날수록 죽음과 가까워지는 것 외에 별다른 일이 없는 요양원에서 한영진은 이 첫사랑을 만난다. 모든 이의 우상이자 별이었던 김이선은 치매환자가 돼 찾아왔다. 그녀는 별이었다. 치매가 걸린 김이선이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우산을 건네줬던 한영진을 기억할 리 없다. 하긴, ‘별이 사람을 기억할 순 없다. 인간이 별을 헤아릴 뿐이다.’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추억과…….
 
요양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연극 ‘낮잠’은 노년의 삶에 맺힌 사랑과 외로움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의 만남은 젊은이들의 그것처럼 빠르고 강하지 않다. 걸음걸이와 행동이 느려지듯 사랑의 속도도 느려졌다.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산책을 하며 옛 추억을 이야기할 뿐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조급하지 않다. 그저 천천히 오늘을 걷는다. 연극 ‘낮잠’은 화려해 오히려 내용물을 초라하게 만드는 과장된 포장을 하지 않았다. 오버된 드라마를 삽입하지도 않았다. 요양원에 부는 봄바람처럼 느리고 평범하면서도 산뜻하다. 다소 지루해질 수 있는 평면적 스토리가 한 사내의 육십 대와 맞물리며 지상에 완벽하게 발을 내렸다. 허구나 환상은 없다. 사랑으로 포장될 수 없는 노년의 삶이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다. 가난과 불안함, 아직 살날이 남은 자식들과 온갖 잔병으로 고생하는 몸을 미화시킬 수만은 없다. 그래서 연극 ‘낮잠’은 포장 대신 내용물을 날것 그대로 무대 위에 올려놓았다. 발가벗겨진 인간의 초라한 육십 대가 친절하게 놓여있다.
 
- 허진호, 어찌할 수 없는 그 서정성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외출’, ‘호우시절’ 등 허진호는 멜로라는 장르에서 단연 두드러진다. 그는 남녀의 관계를 미화시키느라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사랑의 판타지에 목마른 대중들에게는 미세한 균열과 감정의 주고받음을 무심한 듯 집요하게 파고드는 허진호가 괴로울 수도 있다. 연극 ‘낮잠’도 마찬가지다. 기저귀를 차고 있는 주인공 한영진을 보고 관객들이 환상을 갖기란 쉽지 않다. 그의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사랑은 그래서 리얼하고 아름답다. 또 아프다. 허진호의 손을 거친 박민규의 동명소설 원작의 연극 ‘낮잠’도 그의 영화와 비슷하다. 언제나 사랑을 이야기하는 허진호의 연극 ‘낮잠’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서정적이다. 허진호는 사랑의 달콤함을 찬양하는 대신 그의 투박한 손으로 상처 난 삶을 가만히 토닥거린다.


 
연극 ‘낮잠’에는 두 명의 한영진이 등장한다. 또 하나의 한영진은 교복 입은 모습으로 나이 든 한영진 옆에 앉아있다. 그리고는 너처럼 늙을까봐 겁난다고 핀잔을 주고, 네가 나라는 게 싫다고 퍼붓기도 한다. 아름다운 저 소년의 미래가 요실금과 심근경색에 걸려 요양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 사내라는 것에 관객들은 당황한다. 두 한영진은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서 있다. 이는 리얼함과 사적인 대사, 스크린에 어울리는 감정표현으로 채워져 있는 ‘낮잠’에서 가장 연극적 요소기도 하다. 연극은 ‘낮잠’은 영화처럼 반복되는 암전과 장면전환으로 극의 흐름을 끊어놓는 것 같지만, 그 느림이 노년의 거동과 닮아 하나로 흐른다. 나른한 낮잠과 같은 짧은 생이 끝날 때 한영진의 옆에는 결국 아무도 없다. 그 마지막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연극 ‘낮잠’은 역시 불필요한 환상으로 막을 내리지 않는다. 이제 정말 생의 눈을 감아야 하는 한영진이 벤치 위에 누워 있다. 그의 옆에는 치매 걸린 김이선이 있다. 그리고는 한영진을 흔들어 깨운다. 이봐요, 여기서 이렇게 자면 어떡해요…아버지, 일어나세요, 네?